회계법인을 퇴사하던 2017년 무렵, 제 수중에 쥐어진 기장 거래처는 놀랍게도 '단 0개'였습니다.
CPA에 합격한 후 약 4년간은 전략 컨설팅 펌에서 대기업 메가 프로젝트에만 매달렸고, 대주회계법인으로 옮긴 후 3년간은 오직 기업 회계감사와 간간이 법인세 세무조정을 하는 일에만 주력했기 때문입니다. 매달 꼬박꼬박 기장료를 입금해 주는 소위 '기장 밥그릇'은 제 인생에 단 한 톨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 "우리 개업합시다!" — 고리타분한 조직을 박차고 나오다
대형 조직의 생활은 더 이상 가슴을 뛰게 하지 않았습니다. 극도로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회계법인의 위계질서 속에서, 저는 숨이 턱 끝까지 막혀오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온전한 내 이름을 걸고 내 뜻대로 뛰어보고 싶다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매일 밤 꿈틀거렸습니다.
마침 대주회계법인에서 함께 손발을 맞추던 오 회계사님(당시 제가 사수, 오 회계사님이 부사수였습니다)과 마음이 기적처럼 통했습니다.
"오 회계사님, 우리 나가서 개업합시다!"
대책도 없고 뒷배도 없었지만, 청춘의 패기 하나만 믿고 둘이서 호기롭게 사표를 던졌습니다.
2. 아파트 감사와 신규 법인 창립 멤버 합류
그 당시만 하더라도 순진하게 '공인회계사는 당연히 회계법인 간판을 달고 활동해야 하는 법'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장 굶어 죽지 않고 사무실을 유지할 최소한의 먹거리가 시급했습니다. 자본금도 인맥도 없던 초짜 회계사 둘이서 가장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징검다리는 바로 '아파트 회계감사'였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메이저 회계법인에 지점으로 들어가는 것은 절대 사양하고 싶었습니다. 매출의 일정 부분을 소위 '본점 관리비' 명목으로 떼어가는 오랜 관행은 제 상식선에서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상법상 등기 이사가 아니라면, 중요한 경영 결정권에서 철저히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발품을 팔며 '창립 멤버이자 등기 이사로 참여할 수 있는 신규 회계법인'을 찾아 헤맸고, 마침 새롭게 출범하던 신규 법인에 창립 멤버로 이름을 올리며 합류했습니다.
3. 창업박람회 명함 1,000장과 식당 사장님들의 침묵
화려한 창립 멤버 타이틀을 달았지만, 현실은 시베리아 벌판이었습니다. 기다리는 고객도, 걸려 오는 전화도 단 한 통 없었습니다. 완전한 '일거리 제로(0)'의 상태였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들이받았습니다.
양복을 빼입고 코엑스 창업박람회장을 찾아가 지나가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명함 1,000장을 직접 뿌렸습니다. 손에 쥐가 날 정도로 머리를 숙이며 명함을 건넸지만, 돌아온 연락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끼니를 때우러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 앞에서 사장님들께 정중히 명함을 한 장씩 건네며 나왔습니다. "사장님, 정평 이민우 회계사입니다. 세무나 장부 고민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십시오."
물론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세무 기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신뢰'를 파는 일입니다. 사장님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길거리에서 난생처음 보는 새파란 회계사가 명함 한 장 건넨다고 해서, 자신의 피땀 어린 통장과 장부를 덥석 맡길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4. 블로그로 찾아온 첫 일거리: '전력선 인터넷' 대형 사업
명함 영업의 처절한 한계를 절감하고, 매일 밤 피를 말리며 블로그에 세무와 경영 칼럼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거짓말처럼 블로그를 보고 한 통의 문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제 인생의 첫 번째 의뢰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사업 제안은 대단히 파격적이었습니다. "전기 고압선에 통신 신호를 실어 전국적인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는 특허 사업이 있다. 수십억 규모의 기관 투자를 유치해 달라."
아이템 자체는 당시 기준으로 대단히 획기적이고 매력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의뢰인은 제게 달콤한 제안을 던졌습니다. "이 일만 성사되면 사업체에 번듯한 핵심 임원 자리 하나는 무조건 챙겨드리겠습니다."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저는 그 길로 온몸을 내던졌습니다. 컨설팅 회사(PRS) 시절 익혔던 수준 높은 사업계획서와 정밀한 IR 투자 제안서 작성 역량을 총동원했습니다.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 미팅까지 직접 주선하며 정관계 인맥을 총가동했습니다.
의뢰인은 수수료는커녕 미팅에 들어가는 식대나 교통비, 제안서 출력비 등 간접비 한 푼 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공하면 크게 보상받는다'는 희망 하나로, 제 개인 사비를 털어 모든 진행 비용을 도맡아 부담했습니다.
5. 허망한 결말: 십여 년을 뭉개온 놈팽이의 몽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유력 기관 투자자로부터 구체적인 대형 투자 제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몇 달간 쏟아부은 땀방울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한 코미디였습니다.
투자자는 수십억의 거액을 투입하는 조건으로 당연히 상응하는 상당한 지분을 요구했습니다. 정상적인 비즈니스라면 지극히 당연한 투자 협상 테이블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십여 년간 아무런 진척도 없이 시간만 낭비해 왔고, 일하는 동안 커피값 한 푼 내지 않던 그 의뢰인이 회담장에서 기가 막힌 몽니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회사인데, 남에게 지분을 단 1주도 넘겨줄 수 없다!"
투자자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즉각 투자 제안을 전면 철회했고, 협상은 허무하게 박살 났습니다. 수개월간 제 모든 시간과 사비를 갈아 넣었던 첫 번째 프로젝트는, 그렇게 단 1원의 소득도 없이 완전한 허탕으로 끝장났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 염치없는 자는 뻔뻔하게 다시 연락을 해왔지만, 저는 일말의 미련 없이 단칼에 수신 차단했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계시려나 모르겠습니다. ㅎㅎ)
6. 결론: "뭐든 해라, 계속 삽질하다 보면 걸려든다"
첫 일거리는 허망한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사무실 통장 잔고는 바닥을 쳤습니다. 여전히 기장 업체는 0개였고, 저는 다시 지독한 '손가락 빨기 신세'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 뼈아픈 실패를 통해 비즈니스의 가장 냉혹하고 위대한 진리를 온몸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뭐든 해라. 일단 하는 것과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방구석에 앉아 고민만 하고 있으면, 그 어떤 실패도 배움도 얻을 수 없습니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진흙탕에서 굴러봐야만, 그것이 헛된 '삽질'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를 경험해야만 미련 없이 하던 삽질을 접고, 다음 목표를 향해 또 다른 방향의 삽질을 시작할 수 있는 법입니다.
명함 1,000장을 뿌려보았기에 길거리 영업의 한계를 알았고, 전력선 통신 사업에 속아보았기에 허황된 사람을 거르는 법을 배웠으며, 끝없는 삽질 속에서도 매일 밤 블로그를 붙잡았기에 훗날 기장 시장을 뒤흔든 혁신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지금 혹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손가락을 빨고 계십니까? 주저하지 말고 뭐든 시작하십시오. 계속해서 우직하게 삽질을 하십시오. 포기하지 않고 파내려 가다 보면, 결국 언젠가 당신의 인생을 뒤바꿀 진짜 기회가 걸려들 것입니다.